- 유형
- PHIL의 목소리
사업을 한다고 말하면서, 정작 사업을 판단하는 방식은 믿음에 가까운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근거와 데이터보다 회사와 상위 스폰서의 약속을 더 믿는 모습을 보며 내가 계속 해 온 말.
나는 2014년에 다단계를 처음 알게 됐다. 그 이후 여러 사업을 직접 경험했고, 많은 다단계를 조사하고 분석했다.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곳에는 경고했고, 그 안에서 활동하는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그 과정에서 반복해서 본 모습이 있다.
사업을 한다고 말하면서, 정작 사업을 판단하는 방식은 믿음에 가까운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회사가 무엇으로 돈을 버는지보다 회사가 얼마나 대단해질지를 이야기했다. 지금 확인되는 숫자보다 앞으로 이루어진다는 약속을 더 믿었다. 상위 스폰서의 말은 질문하고 확인할 설명이 아니라, 의심해서는 안 되는 말씀처럼 받아들여졌다.
나는 그 모습이 안타까웠다. 그리고 같은 일을 반복해서 볼수록 화가 났다.
숫자를 보여줘도, 약속으로 돌아간다
돈이 어디에서 들어오고 어디로 나가는지 설명한다. 약속한 수익을 계속 지급할 수 있는지 묻는다. 실제로 매도하고 출금해 회수할 수 있는 돈과 화면에 표시된 금액이 다르다는 것도 보여준다.
그런데 대화는 다시 회사와 스폰서의 말로 돌아간다.
내가 본 반응을 풀어 쓰면 이런 식이다.
“아직 완성되지 않아서 그렇다.” “큰 그림을 봐야 한다.” “그분이 우리를 속일 사람이 아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달라진다.”
이 말들은 돈이 어디서 생기는지에 대한 답이 아니다. 그런데 답처럼 쓰인다.
확인된 문제는 잠깐의 과정이 되고, 확인되지 않은 미래는 확실한 결론이 된다.
이렇게 되면 무엇을 보여줘야 판단이 달라지는가? 좋은 결과는 회사가 옳았다는 증거가 되고, 나쁜 결과는 더 기다려야 할 이유가 된다면, 그 믿음은 틀렸다는 것을 확인할 방법조차 없어진다.
사람을 믿는 것과 사업을 검증하는 것은 다르다
나를 소개한 사람이 좋은 사람일 수 있다. 나를 진심으로 도우려 했을 수도 있다. 그 사람도 회사의 설명을 믿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는 사실과, 그 사업이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친절한 사람이 설명했다고 수익원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오래 알고 지냈다고 출금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그 사람이 실제로 돈을 벌었다고 해서 내가 들어간 뒤에도 같은 결과가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사람의 마음을 확인하자는 것이 아니다. 내 돈이 들어가는 구조를 확인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구조를 물으면 사람에 대한 불신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다. 회사의 설명을 따져 보면 조직을 흔드는 사람이 되고, 위험을 말하면 함께 성공하려는 사람들의 의욕을 꺾는 사람이 된다.
사업의 질문이 충성심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비전은 필요하다. 하지만 비전이 증거는 아니다
사업에도 비전은 필요하다. 아직 이루지 못한 목표가 있다고 해서 모두 거짓인 것은 아니다.
문제는 비전을 말한다는 이유로 현재의 검증을 건너뛰는 것이다.
앞으로 이용자가 늘어난다는 말은 지금 외부 매출이 있다는 증거가 아니다. 생태계가 커진다는 말은 지금 지급하는 보상의 출처를 설명하지 않는다. 새로운 시스템으로 옮겨 가면 좋아진다는 말은 이전 약속이 왜 지켜지지 않았는지에 대한 답이 아니다.
비전은 앞으로 하겠다는 말이다. 실적은 실제로 한 일이다. 약속은 지급하겠다는 말이고, 회수는 내가 실제로 확보한 돈이다.
이것들을 섞으면 안 된다.
미래를 기대할 수는 있다. 하지만 기대를 오늘 확인된 사실처럼 계산해서는 안 된다.
믿음을 지키느라 판단을 잃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사람들이 단순히 몰라서만 그 안에 남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넣은 돈이 있고, 함께 들어온 사람들이 있고,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했던 설명도 있다. 사업이 잘못됐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 돈의 손실만 인정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 내가 믿었던 사람, 내가 했던 선택, 내가 전했던 말까지 돌아봐야 한다.
그러니 다음 약속을 붙잡고 싶은 마음은 이해한다.
그렇다고 다음 약속이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받아들이기 괴로운 현실이라고 해서, 듣기 좋은 설명이 현실을 대신할 수는 없다.
나는 그 안에 있는 사람을 비웃고 싶은 것이 아니다. 믿음을 지키려고 애쓰는 동안 자신의 돈과 판단할 권리까지 내주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내가 계속 하는 말
그래서 나는 이런 말을 자주 해 왔다.
사업은 데이터로 하는 것이고, 종교는 미래에 대한 비전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런데 비즈니스를 종교처럼, 종교를 비즈니스 하듯이 한다.
종교 전체를 정의하려고 하는 말은 아니다. 믿음 자체를 비난하려는 것도 아니다.
내가 지적하는 것은 돈을 다루는 자리에서 검증 대신 맹신을 요구하는 태도다. 그리고 신뢰와 공동체를 내세우면서, 그 관계를 돈을 넣고 사람을 데려오게 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모습이다.
사업이라면 물을 수 있어야 한다. 설명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처음 약속과 실제 결과를 비교할 수 있어야 한다. 결과가 다르면 판단을 바꿀 수 있어야 하고, 더는 참여하지 않겠다는 선택도 존중받아야 한다.
질문할 때마다 믿음이 부족하다고 하고, 문제가 생길 때마다 더 믿고 기다리라고 한다면, 도대체 언제 사업을 평가할 수 있는가?
사업의 질문에 믿음으로 답하지 말라. 내 돈에 대한 질문에는 근거로 답하라.
나는 사람들이 누구의 말을 더 잘 믿을지 경쟁하기보다, 무엇을 확인하고 돈을 맡겼는지 돌아봤으면 한다.
판단과 행동은 각자의 몫이다. 그러나 그 판단의 자리를 회사나 스폰서에게 통째로 맡기지는 않았으면 한다.